지난 1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CNT)는 각각의 독특한 구조를 통해 기존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능을 보여주며 전 세계 첨단 산업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고강도, 고전도성, 열전도성 등 다양한 특성을 바탕으로 이들 탄소 기반 나노소재는 이제 기술적 가능성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주요 산업별 응용 현황과 함께, 글로벌 기업 및 기관의 기술 전략을 심층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주요 응용 분야별 활용 동향
첨단 탄소 소재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소재로 활용됩니다. 대표적으로 에너지 저장, 전자/반도체, 복합소재, 바이오메디컬, 항공우주,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CNT와 그래핀의 응용이 활발합니다:
에너지 저장 (배터리 및 슈퍼커패시터):
전기차 시대를 맞아 배터리 성능 향상에 CNT와 그래핀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MWCNT는 리튬이온전지의 양극 도전재로 상용화되어, 소량 첨가만으로 전극의 전기전도성을 높이고 구조적 안정성을 부여합니다.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은 CNT를 첨가하여 에너지 밀도 향상과 수명 연장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핀은 배터리 음극 소재(예: 실리콘-그래핀 복합 음극)나 슈퍼커패시터 전극재로 연구되며, 높은 전기전도도와 넓은 표면적 덕분에 충방전 속도 개선 및 수명 향상 가능성을 보입니다. 그래핀의 열전도성은 배터리 발열 제어에도 도움을 주어, 고출력 배터리의 안전성 향상에도 기여합니다. 향후 CNT/그래핀 복합 전극, 리튬-황 전지용 탄소나노재료 등 차세대 에너지저장장치에 광범위한 적용이 예상됩니다.
전자반도체: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은 차세대 전자소자의 핵심 후보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SWCNT 트랜지스터는 나노미터 규모에서 높은 이동도와 전류량을 보여 실리콘을 대체할 트랜지스터 채널재로 관심을 끌었고, IBM 등은 CNT를 이용한 시범 논리소자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래핀은 투명 전극(투명하고 전도성 높은 특성)으로 유기 LED 디스플레이, 터치스크린 등에 응용이 시도되었고 삼성전자는 그래핀 기반 투명 터치패널을 구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래핀은 전극 배리어 층(예: 구리 배선의 확산방지막)으로 활용 시, 기존 탕그스텐/탄탈륨 대비 수 nm의 얇은 막으로도 동등 이상의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고되어 반도체 소자의 미세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그래핀 자체는 밴드갭 부재로 인해 논리소자에 바로 쓰기 어려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그래핀 밴드갭 엔지니어링과 2D 반도체와의 이종적층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그 밖에도 CNT/그래핀 기반 센서 소자(가스 센서, 광센서 등)는 나노소재의 높은 민감도와 표면적 덕분에 초고감도 검출이 가능해, IoT와 웨어러블 기기에 적용 연구가 활발합니다.
복합재료:
탄소섬유 강화 복합재처럼, CNT와 그래핀도 고성능 복합재의 필러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폴리머 수지에 CNT나 그래핀을 수분율로 첨가하면 기계적 강도와 탄성, 전기전도도, 내열성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미 스포츠 용품(테니스 라켓, 자전거 프레임 등)에는 탄소나노튜브/그래핀 강화 복합재가 적용되어 경량과 강도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CNT/그래핀을 에폭시, PLA 등의 수지 매트릭스에 첨가하여 항공기 내장재, 풍력 블레이드, 자동차 차체 패널 등의 기계적 성능을 높이려는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CNT는 전기전도성 부여에도 효과적이어서, 복합재에 첨가 시 정전기 방지(ESD) 및 EMI 차폐 성능을 부여하여 전자장비 하우징 소재로도 검토됩니다. 다만 균일 분산과 계면결합이 기술적 과제이며, 현재 상용 응용은 한정적이지만 꾸준한 개선으로 다양한 산업용 복합재료에 첨단 탄소소재 채택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바이오/의료:
탄소나노소재의 나노미터 크기와 생체적합성을 활용하여,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약물 전달체로서 CNT를 이용하면 약물을 나노튜브 내부에 적재해 표적 세포에 전달하거나, 암세포에 CNT를 축적시킨 후 레이저로 가열하여 국소적으로 고열치료(광열치료)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래핀은 바이오 센서로서 DNA, 단백질 등의 생체분자를 감지하는 전극 소재로 활용되며, 높은 전도성과 큰 표면적 덕분에 매우 민감한 전기화학센서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래핀의 유연성을 이용해 신경 전극, 생체 삽입형 전자소자 등에 적용함으로써 인체 조직에 밀착되는 전극을 만들기도 합니다. 한편 조직공학 분야에서는 그래핀을 함유한 하이드로젤이나 나노튜브를 포함한 3D 지지체를 이용해 줄기세포 분화나 조직 재생을 돕는 연구도 있습니다. 다만 인체 적용 시 안전성이 최우선이므로, 탄소나노소재의 세포 독성 및 체내 축적에 대한 선행 연구가 진행 중이며 현재는 주로 실험실 단계의 응용이 많습니다.
항공우주 및 자동차:
항공기와 자동차 산업은 경량화와 고강도 소재에 대한 수요가 높아, 탄소섬유 복합재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CNT와 그래핀은 이러한 복합재에 소량 첨가하여 기존 탄소섬유 복합재의 성능을 보강하는 용도로 연구됩니다. 그래핀을 에폭시 수지에 첨가하면 복합재의 충격 강도와 난연성이 개선되고, CNT를 카본섬유/수지 복합재에 섞으면 전기전도도를 부여하여 복합재 구조물의 손상 감지(전기저항 변화로 균열 모니터링)나 낙뢰 보호 등에 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래핀으로 코팅한 항공기 동체 표면은 레이다 흡수 기능이나 빙결 방지 발열 기능을 갖출 수 있어 군용 항공기 스텔스 성능이나 혹한기 운용능력 향상 측면에서 연구되고 있습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타이어 제조에 그래핀을 첨가해 마모 성능과 연비를 개선한 사례가 있고(이탈리아 Pirelli사의 그래핀 강화 타이어 등), 전기차용 복합소재 부품에도 CNT/그래핀을 이용해 차량 경량화와 배터리 내구성 향상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결국 항공우주와 자동차에서는 경량/고강도/다기능 소재로서 첨단 탄소 소재의 활용도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기타:
이 외에도 환경 분야(수처리용 흡착제, 오염물질 분해 촉매 지원체 등에서 CNT 활용), 촉매(연료전지 촉매 담체로 그래핀 사용), 방산/국방(경량 방탄복 소재 등)에서도 첨단 탄소소재의 응용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일부 상용 제품에 CNT와 그래핀이 도입된 초기 단계이지만, *”소재의 응용을 통해 최종 산업에서 최대 13배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다양한 산업에 파급효과를 가져올 잠재력이 큰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표 기업 및 연구기관 동향 (글로벌 &지역별)
첨단 탄소 소재 분야에서는 소재 생산 전문기업부터 응용제품 제조사, 연구기관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주요 기업과 연구기관들의 최근 5년간 전략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글로벌/미국:
- OCSiAl(룩셈부르크에 본사)사는 세계 최대의 단일벽 탄소나노튜브 생산기업으로, TUBALL™ 브랜드로 고품질 SWCNT를 대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2019년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유니콘으로 등재되었고, 2021년 일본 다이킨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전기차 배터리용 SWCNT 응용 개발을 가속화했습니다. 2024년에는 세르비아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신설하여 유럽과 아시아 시장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 미국에서는 Applied Nanotech, Nanocomp (직조 CNT 섬유 생산), Vorbeck Materials 등이 CNT 응용제품 개발에 주력해왔으며, XG Sciences는 그래핀 분말 생산에 앞장섰습니다. 다만 일부 초기 그래핀 기업(XG Sciences 등)은 수익화 실패로 최근 정리되고, Universal Matter 등이 그 자산을 인수하는 등 시장 재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대기업 측면에서는 IBM이 나노튜브 트랜지스터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왔고 TESLA가 배터리용 나노소재를 검토하는 등 최종 제품 기업들도 R&D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National Graphene Association 등의 단체와 산드리아/아르곤 국립연구소 등도 그래핀 상용화 연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럽:
- 유럽은 그래핀 플래그십(Graphene Flagship) 프로젝트를 통해 2013~2023년 약 10억 유로를 투자한 바 있으며, 이를 통해 수많은 스타트업과 연구성과가 나왔습니다.
- 영국의 Haydale Graphene Industries는 그래핀 소재의 기능화와 복합재 적용에 집중하고 있고, Versarien은 그래핀 폼 및 잉크를 활용한 전자제품 부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 스페인의 Graphenea는 고품질 그래핀 시트와 산화그래핀 생산을 선도하며, 연구기관과 기업에 소재를 공급합니다.
- 이탈리아의 Directa Plus는 그래핀 기반 섬유 및 의류, 타이어 등 소비재 응용에 주력해 최근 그래핀 섬유로 만든 사이클링 웨어와 타이어를 상용화했습니다.
- 캐나다 NanoXplore는 저비용 그래핀 분말을 대량생산하여 플라스틱 컴파운드에 공급하고 있으며, 전기버스 부품 등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 독일의 BASF, 프랑스의 Arkema 등 전통 화학사들도 자회사나 협력을 통해 CNT/그래핀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 연구기관으로는 그래핀 발견지인 맨체스터 대학 산하 National Graphene Institute, 케임브리지 그래핀 센터, 독일 Max Planck Institute, Chalmers 대학(그래핀 플래그십 주관) 등이 핵심이며, 이들 기관은 소재 합성부터 소자 응용까지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며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중국:
- 중국은 정부의 전략적 지원 하에 첨단 탄소소재의 양산과 활용에 가장 공격적인 나라 중 하나입니다. 2D Carbon (칭화대 출신 기업), The Sixth Element (제육원소 소재과기), Shenzhen Grafen 등 수십 개의 그래핀 업체가 존재하며, 주로 저가의 그래핀 나노플레이트릿 및 산화그래핀을 대량 생산하여 코팅재, 폴리머 첨가제, 배터리 재료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 중국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을 급격히 낮추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그래핀 가격 인하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탄소나노튜브 분야에서는 CNano Technology와 SusNano 등이 연간 수천 톤 규모의 MWCNT 생산능력을 갖추었고, 중국 배터리 업체들과 연계해 내수 시장을 확대했습니다.
- 중국 정부는 그래핀을 “전략적 신흥산업 소재”로 지정하고 각지에 그래핀 산업단지를 설립하여 기업연구소 집적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시(Wuxi), 청도(Qingdao) 등에 그래핀센터가 조성되고 수백 개의 관련 기업이 육성되고 있습니다.
- 연구 측면에서 중국과학원(CAS), 칭화대, 베이징대 등의 연구진이 그래핀 합성(예: 대면적 CVD 그래핀)과 CNT 대량생산 기술을 연구개발하여 특허와 논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중국은 첨단 탄소소재 논문 및 특허 출원에서 세계 1위 수준을 보이며, 산학연 일체로 기술을 끌어올리고 산업화를 추진하는 추세입니다.
한국/일본:
- 일본은 전통적으로 탄소섬유 분야의 절대 강자로, 도레이・테이진・미쓰비시케미칼 3사가 글로벌 탄소섬유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최근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에도 R&D 투자를 확대하여, 테이진은 CNT 복합재 개발, 도레이는 그래핀 산화물 기반 멤브레인 연구 등에 나서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NEDO 프로젝트 등을 통해 탄소섬유 및 나노탄소 소재를 국가전략소재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는 LG화학이 배터리용 MWCNT 대량생산에 뛰어들어 2017년 이래 여수 공장에서 생산라인을 증설해 현재 연 2,900톤 생산능력을 확보했고 2025년 6,100톤 목표로 확대 중입니다. 한화, SKC 등도 탄소나노소재 사업에 관심을 보이며, 효성첨단소재는 탄소섬유와 함께 탄소나노튜브 복합재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으로는 그래핀스퀘어가 CVD 그래핀 대량합성 기술로 주목받았고, 아니스톤(Anyston) 등이 그래핀 응용제품 개발에 나섰습니다.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울산 UNIST, 로드니 루오프 교수)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의 기관이 세계적인 그래핀/CNT 연구를 수행하며,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차세대 나노소자나 배터리 연구에서 그래핀과 CNT를 활발히 연구해 왔습니다.
- 전반적으로 한일 양국은 재료의 품질 향상과 응용 특화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대기업 주도로 상용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첨단 탄소소재 분야는 글로벌 스타트업과 전통 소재기업, 그리고 국가 연구기관이 얽혀있는 동적 환경입니다. 최근 5년간의 경향을 요약하면, ①대량생산 기술 확보 경쟁, ②배터리・전자 등 특정 응용분야 공략, ③협업과 인수합병을 통한 생태계 정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술성과 사업화를 모두 갖춘 기업들이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각국 정부와 연구기관의 지원도 지속될 것입니다.